검사 타이틀을 버리고 변호사가 된 이유 – 법무법인 온강 이고은 대표변호사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온강 대표 변호사 이고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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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범죄 사건으로 깊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의뢰인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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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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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으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였던 또 다른 의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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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을 수 없는 상처로 깊은 절망에 빠졌던 의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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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의 기로에 섰던 의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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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도,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절망 속에 계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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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해 법무법인 혹은 성범죄 변호사를 검색하다 이 글을 보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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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성범죄 전담 검사 출신 변호사 이고은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성범죄 전담 검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성범죄 사건을 처리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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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피해자와 피의자 양측의 고통과 절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법률 전문가로서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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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성범죄 전담 검사 출신 변호사’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저의 진솔한 이야기와, 왜 제가 검사의 길을 포기하고 변호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신념으로 의뢰인들을 돕고 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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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리는 말씀이 모든 분께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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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 한 분이라도 이 글을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으실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일단, 왜 검사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변호사를 선택했는지 질문하신다면 제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 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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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저는 “말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고, 자연스레 아나운서를 꿈꿨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방송반 활동은 제게 설렘을 안겨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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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TV 드라마 속 변호사의 모습에 푹 빠졌습니다.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말하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모습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이끌림은 저를 법학과, 로스쿨까지 이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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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스쿨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법 조항과 이론에 지쳐갈 때쯤, ‘떨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검찰 인턴십에 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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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강력, 조직폭력 전담 여성 검사님의 카리스마를 보며 ‘거악 척결’의 현장을 실감했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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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사의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로스쿨에서 검사에 합격하는 것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일이었기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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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가족도 없는 제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불안감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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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발표 날, ’02’로 시작하는 법무부의 전화를 받고 “검사님, 합격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벅차오르는 감격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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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청 거리를 30분 넘게 울면서 돌아다녔던 그 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꿈, 검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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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검사로 첫 발을 내디딘 서울남부지검에서, 여자 부장님께서는 ‘여자 검사는 없다, 오직 검사만 있을 뿐’이라며 ‘여’자를 떼고 검사로서 당당히 설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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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르침은 제 검사 생활의 굳건한 신조가 되었고, 매 사건 혼신을 다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부장님의 세심한 지도 덕분에 제 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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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보다는 서류 업무가 중심이 되는 검사 생활에 조금씩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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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고 법정에서 역동적으로 변론하는 것을 갈망하던 저에게, 검사실에서 마주하는 변호사님들의 활약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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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일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커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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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랜 꿈이었던 검사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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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시면서 제 삶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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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을 꿈꿨지만 저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헌신하신 어머니를 보며,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오늘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 아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변호사인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멋지게 해낼 테니까

한 번만 저를 믿고 이해해 주세요.

 

기적적으로 회복하신 어머니께 제 꿈을 말씀드렸고, 부모님의 허락으로 오랜 꿈이었던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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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시절의 경험과 어머니의 투병 과정은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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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고,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하고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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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변호사로서 ‘오늘 온 의뢰인은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고 있으며, 나는 나의 변호로 그 희망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모든 사건에 진심을 다해 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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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지만 강하게,

의뢰인을 끝까지 책임지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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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법무법인 온강의 이름에 담긴 뜻이자,

제가 변호사로서 평생 지켜갈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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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시절부터 품어온 소명의식과 사명감으로,

한 분 한 분의 절박한 희망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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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은 대표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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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저는 의뢰인들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드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들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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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성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의뢰인이,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이끌어낸 후 “이제야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시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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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성추행 누명을 쓰고 직장과 가족,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였던 의뢰인이, 끈질긴 법정 공방 끝에 무죄를 선고받고 “변호사님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며 감격하시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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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소지 혐의로 조사를 받던 의뢰인이, 깊이 반성하고 재범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짐하며, 선처를 호소한 끝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이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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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피해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던 의뢰인이, 가해자의 강력 처벌과 함께 피해 회복을 위한 민사 소송에서도 승소하여, “잃어버린 제 삶을 되찾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희망을 이야기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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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였음에도, 상대방의 무고로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했던 의뢰인이, 철저한 증거 수집과 변론을 통해 혐의를 벗고 “진실을 밝혀주셔서 감사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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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은 의뢰인들의 모습은, 제가 변호사로서 걷는 이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굳건히 이 길을 걸어가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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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고집스럽게 자신의 철학을 지켜나가는 변호사인 제가 믿음이 가신다면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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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찾아 주시는 모든 분들께 섬세하고 정성 들인 법률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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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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