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위장수사 신설 조항의 의미와 한계

배한진변호사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강연에 관한 이미지

비대면 마약 유통조직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조직원을 모집하고 업무를 지시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조직 내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마약을 운반하고 은닉하는 이른바 ‘드랍퍼’를 모집할 때에는 신분증 사진과 주소, 가족 연락처까지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하는 동시에, 조직원이 마약을 빼돌리거나 조직에서 이탈할 경우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지난 10월 7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강의에서 소개한 이러한 사례는 마약 유통조직에 대한 위장수사에 어떤 법적 수단이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수사관이 조직 내부에 접근하려면 경찰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총책이 신분증 등의 제출을 요구한다면, 수사관 역시 위장 신분을 뒷받침할 문서나 기록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신원 확인 요구에 대응할 법적 근거

2027년 5월 27일 시행 예정인 개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신분위장수사 특례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응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제4조의2 제2항 제1호가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 도화 및 전자기록 등의 작성, 변경 또는 행사”를 허용한다는 점입니다. 흔히 ‘신분 위조’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히는 위장 신분을 뒷받침할 문서와 기록을 만들거나 변경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규정은 수사 실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수사를 위해 필요하더라도 신원 확인용 문서를 임의로 만들거나 고치는 행위는 문서의 종류와 작성·변경 방식에 따라 공문서위조나 위조문서행사 등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새 특례는 일정한 요건과 절차를 갖춘 경우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근거를 제공합니다. 수사관이 조직의 신원 확인 요구에 대응하면서 내부에 접근하고, 외부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선의 지시와 조직원들의 역할 분담을 파악할 수 있도록 수사 수단을 확대한 것입니다.

 

신분위장수사의 허가가 함정수사까지 허용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위장 신분을 적법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신분을 이용해 범의가 없던 상대방에게 범행을 결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입니다. 즉 신분위장수사를 허용한다고 해서 범의유발형 함정수사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수사관이 적법하게 마련한 위장 신분으로 이미 마약을 판매하려는 사람에게 접근해 거래 의사를 확인했다면, 기존에 존재하던 범의를 확인하면서 범행의 기회를 제공한 수사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면 판매할 의사가 없던 사람에게 거액의 보수를 약속하거나, 거듭된 거절에도 압박과 설득을 이어가 결국 마약을 구해 오도록 했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신분위장수사에 대한 허가를 받았더라도, 수사기관의 개입으로 상대방에게 범의가 생겼다면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도 이미 범의를 가진 사람에게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수사와, 본래 범의가 없던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을 사용해 범의를 일으키는 수사를 구분해 왔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며, 이에 기초한 공소제기 역시 무효라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신설 조항 역시 마약류범죄를 계획하거나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을 체포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워야 하며,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여야 한다는 제한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건과 기존 판례를 함께 고려하면, 새 특례는 범죄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 수단을 확대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범의가 없던 사람에게 범행을 결심하게 하는 수사까지 허용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거래 제안과 범의 유발의 경계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물론 구체적인 사건에서 그 경계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수사관이 먼저 말을 걸거나 거래를 제안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법한 함정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마약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범행에 대한 범의도 이미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은 범죄의 종류와 성질,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경위와 방법, 상대방의 반응과 처벌 전력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된 사람이 친분이나 동정심을 이용하거나, 금전적·심리적 압박 또는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으로 과도하게 개입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입니다.

따라서 위장수사에서는 검거 당시의 거래 장면뿐 아니라, 그 거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충실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초 접촉 전에 어떤 혐의 자료가 있었는지, 누가 거래를 제안했는지,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주저했을 때 수사관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거래 조건은 누구의 요구로 바뀌었는지 등이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거래가 성사된 시점의 대화나 수사관에게 유리한 일부 내용만으로는 범의가 원래 존재했는지,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위장수사의 적법성을 확인하려면 전체 과정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위법수사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최초 접촉부터 마약거래에 이르기까지의 대화와 수사 경과를 빠짐없이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사관이 사용한 휴대전화에 관련 전자정보가 남아 있다면, 필요한 경우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 등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를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단순히 대화 화면을 일부 캡처해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대화의 맥락과 수집 경위, 자료의 무결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증거 확보 절차까지 충실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결국 위장 신분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더라도, 실제 수사 과정의 적법성은 별도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직 내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되었는지 검증할 수 있는 기록이 함께 갖추어질 때, 신분위장수사는 실효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위장수사에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클릭)을 읽어보시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마약류범죄 신분비공개수사 관련 주요 법률 조항 정리

관련 조문 주요 내용
제4조의2

제1항

사법경찰관리임을 밝히지 않거나 부인하는 방법으로 접근하여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는 신분비공개수사를 규정
제4조의2

제2항

마약류범죄를 계획·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했다고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다른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하거나 범인을 체포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워 수사 목적 달성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허용
제4조의2

제2항 제1호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도화·전자기록 등의 작성, 변경 또는 행사 허용
제4조의2

제2항 제2·3호

위장 신분을 이용한 계약·거래 및 마약류·임시마약류·예고임시마약류의 소지·매매·광고·수수·운반·수입 허용
제4조의3

제3~6항

사법경찰관리의 신청과 검사의 청구를 거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함. 신청 시 소명자료를 첨부하고, 허가서에 수사의 종류·목적·대상·범위·기간·장소·방법 등을 특정해야 함
제4조의5

제1·2항

긴급한 경우 사전 허가 없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으나, 지체 없이 허가 절차를 진행해야 함. 수사 개시 후 48시간 이내에 법원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즉시 수사를 중지해야 함
제4조의9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부득이한 위법행위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등 법정 요건을 충족하면 형사·징계·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면책을 규정합니다.

위 조문에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를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분위장수사의 허가를 받았더라도, 실제 수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유인행위의 적법성은 특례의 요건과 기존 함정수사 판례에 따라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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